1.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살다 보면 말하지 않은 말이 말한 말보다 더 많다. 그날의 서운함, 무심한 말에 찔린 마음, 바라는 게 있었지만 끝내 꺼내지 못한 바람들. 나는 분명 마음속으로 수없이 말했다. 지금 그 말 너무 서운해. 나한테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실 난 지금 이게 힘들어. 하지만 그 말들은 입 밖으로 나오는 대신 침묵이라는 옷을 입고 내 안에 갇혔다. 괜히 분위기 망칠까 봐, 상대가 상처받을까 봐, 내가 예민해 보일까 봐. 그래서 참았다.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내 안엔 작은 무언가가 쌓이기 시작했다.
2. 참는다는 건 감정을 저장하는 일이다.
참는다는 건 감정을 사라지게 하는 게 아니다. 참는다는 건, 감정을 보류하는 일이다. 마치 누군가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는 부치지 않은 채 서랍에 넣어두는 것처럼.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조용히 내 마음의 한 구석에 저장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보류된 감정들은 늘어난다. 처음엔 작았던 불편함도 언젠가 또 다른 상황과 겹치면서 더 커진 파도로 돌아온다. 나는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쌓여갔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그제야 감정은 무겁고, 참았던 나 자신이 서글퍼진다. 왜 나는 늘 참기만 했을까? 그 물음이 나를 흔든다.
3. 나는 왜 말하지 못했을까
이 정도는 참아야지. 말해봤자 뭐가 달라지겠어. 괜히 말 꺼냈다가 더 어색해질 수도 있어. 그 말들이 내 입술을 무겁게 만든다. 사실 나는 다정하고 싶었다. 상대와의 관계를 지키고 싶었고, 분위기를 해치고 싶지 않았다. 때로는, 내가 말하는 순간 내 마음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날까 봐 두려웠다. 참고 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질까 봐, 상대가 놀라거나 부담스러워할까 봐, 말을 아꼈다. 그렇게 나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고, 그만큼 진짜 나를 멀리했다. 말하지 못한 감정은 결국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나와 나 사이의 거리감을 키우는 일이었다.
4. 참음의 언어에도 해석이 필요하다.
침묵에도 감정이 있다. 표정 없는 얼굴에도 울고 있는 마음이 있다. 내가 참았던 것들은 지나고 나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괜찮아.라는 말이 진짜 괜찮다는 뜻이 아닐 때, 그냥 넘어가.라는 말 뒤에 서운함이 숨어 있을 때, 참음은 언어가 된다. 해석되지 않은 언어. 그래서 때로는 참았던 마음을 꺼내 읽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또는 내가 나의 감정을 해석하고 글로, 그림으로, 말로 조금씩 표현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참는다고 강한 게 아니다. 말할 수 있을 때 진짜 강해지는 것. 감정을 전달하는 용기는 결국 나를 지키는 힘이다.
말하지 못하고 삼킨 감정들은 잊히지 않고 내 안에 머문다. 조용하고 무거운, 참음의 언어로. 우리는 종종 그 언어를 해석하지 못한 채 지나쳐온 날들 위에 미련, 후회, 서운함을 쌓는다. 이제는 조금 달라지고 싶다.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조심스럽게라도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나, 그때 사실 이런 감정이 있었어.그렇게 말하는 연습을 시작해보자.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 어쩌면 틀렸다. 감정은 표현되어야 이해받을 수 있고, 이해받을 때 우리는 덜 외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