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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울고 난 뒤의 정적 – 감정 후의 고요함

by 비판텐 2025. 4. 25.

 

 

감정 후의 고요함

 

 

1. 눈물이 멈추고, 고요가 내려앉는 순간

한참을 울고 나면 몸도 마음도 축축 처진다. 얼굴은 퉁퉁 붓고, 눈가는 시큰거리고, 머릿속은 하얘진다. 그렇게 감정의 파도가 한바탕 몰아치고 나면 어느샌가 정적이 찾아온다. 그건 누군가 강제로 끌어낸 평온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이 소모된 자리에 놓인 고요다. 속은 텅 빈 것 같고, 어지러웠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진다. 그 순간엔 뭔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특별히 해결된 것도 아니지만 이상하리만큼 더 울 수 없는 평온이 머무른다.

 

 

2.감정이 휩쓸고 간 자리

우리가 크게 울 때는 그 안에 말로 못 할 것들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미뤄둔 슬픔, 속상함, 답답함, 애써 외면한 외로움까지. 울음은 그 모든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통로다. 그러니 다 울고 난 뒤의 고요는 단순한 정적이 아니다. 감정의 잔해들이 바닥에 가라앉은 평면 같은 상태다. 울음은 한편으론 정리다. 감정을 비워내는 정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모든 게 잠시 멈춘 듯한 그 시간은 어쩌면 우리가 정말로 자기 자신과 처음 조우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3. 고요함은 슬픔과 평화의 경계

울고 나서 조용해진 마음은 무언가 잃은 듯 공허하지만 동시에 조금은 가벼워진다. 그 감정은 슬픔이 아니면서도, 완전히 평화롭지도 않다. 슬픔과 평화 사이 어딘가에 있는 정지 상태에 가깝다. 이 고요 속에서는 누구의 말도, 어떤 위로도 지나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 순간의 나는 그저 나 자신으로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판단이나 해석 없이, 그저 숨 쉬는 존재로 남아 있다. 그런 고요는 흔치 않은 감정이다. 하지만 깊은 눈물 뒤에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4. 다시 흐르기 위한 잠시의 멈춤

그 정적은 오래 가지 않는다. 현실은 다시 돌아오고, 해야 할 일들은 내 눈앞에 쌓인다. 하지만 그 짧은 고요의 시간은 분명 의미가 있다. 마음이 흐르던 방향을 잠시 멈추고, 흐름을 바꾸는 여지를 주는 시간. 눈물은 멈췄고,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는 조금 다르다. 감정을 비워냈고, 조용히 자신을 마주했으며,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조금 더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 그런 고요는 치유의 입구다. 아직 회복되지 않았더라도, 회복할 수 있겠다는 실마리를 얻은 시간이다.

 

우리는 모두 감정을 참다가, 버티다가, 한순간에 터뜨린다. 그리고 그 폭풍이 지나간 뒤 찾아오는 정적 속에서 문득 깨닫는다. 아, 나 진짜 많이 힘들었구나. 이제 조금 나아질 수 있을지도 몰라. 그건 약해진 게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어루만질 줄 아는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조용한 강함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고요의 힘으로 다시 천천히 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