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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아닌 위장이 반응한 슬픔 – 감정과 식욕

비판텐 2025. 4. 16. 15:43

 1. 입으로 들어간 건 음식인데, 사실은 위로였다.

슬픔이 몰려오는 밤, 나는 자꾸 뭔가를 먹는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입이 심심한 것도 아니다. 그저 뭔가가 필요했다. 그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초콜릿을 꺼내고, 라면을 끓이고, 차가운 음료를 마신다. 음식은 입으로 들어가지만 그 안에는 내 외로운 마음, 고단한 하루, 상처받은 기억이 담겨 있다. 한 입 한 입은 마치 괜찮아, 괜찮아 하고 등을 두드려주는 손길처럼 느껴진다. 이럴 때의 식사는 더 이상 영양 섭취가 아니다. 그건 마음을 위한 즉석 위로이고, 말없이도 슬픔을 달래주는 유일한 방식이다. 나는 음식을 씹으며 감정을 삼키고, 뜨거운 국물을 마시며 눈물을 대신 삼킨다.

 

감정과 식욕

 

 

 

2. 감정과 식욕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우리는 흔히 감정과 식욕은 별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뇌는 감정과 식욕을 동일한 시스템에서 조절한다. 슬플 때 위장이 반응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감정이 무너질 때, 신체는 위급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도파민이나 세로토닌처럼 감정을 안정시키는 호르몬을 찾아 헤맨다. 음식,특히 탄수화물이나 당류는 이 호르몬을 단시간 내에 빠르게 분비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슬플수록 자꾸 달콤한 것, 기름진 것, 뜨거운 것을 찾는다. 그건 몸이 보내는 신호이자, 감정이 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다. 슬픔은 단순히 마음속에만 머무는 감정이 아니다. 그건 몸으로 스며들어 위장에까지 반응을 일으키는 감정이다.

 

 

 

3.식욕이라는 탈을 쓴 감정들

나는 종종 묻는다.  지금 진짜 배가 고픈 걸까? 아니면  외롭거나, 속상하거나, 지쳤기 때문에 먹고 싶은 걸까? 의외로 많은 경우, 식욕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건 다른 감정들이다. 상사에게 혼난 날, 치킨을 뜯으며 억울함을 씹어낸다. 친구에게 소외당한 날, 케이크를 퍼먹으며 외로움을 녹인다. 갑작스럽게 헤어진 연인을 떠올린 날, 입안 가득 매운 떡볶이로 마음의 매운맛을 덮는다. 식욕은 자주 감정의 탈을 쓴다. 그래서 스스로를 잘 관찰하지 않으면 나는 왜 이렇게 자꾸 먹지?라는 자책만 남는다. 하지만 그건 식욕이 아니라, 누군가 알아봐주지 않은 슬픔의 몸짓일 수 있다. 음식을 통해 나는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을 설명하고 있었던 거다.

 

 

 

4. 먹는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감정으로 먹는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람은 감정을 먹고 사는 존재다. 기쁨을 나누며 함께 밥을 먹고, 슬픔을 달래며 혼자 야식을 먹는다. 음식은 인간이 감정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다. 슬퍼서 먹는 것도 결국은 살아 있으려는, 버티려는 방식이다. 감정이 무너졌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여전히 나를 돌보려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슬픔이 오랫동안 외면되었을 때다. 감정을 자꾸만 먹는 것으로만 다스리다 보면, 내 몸이 감정의 쓰레기통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중요한 건, 먹는 행위 그 자체보다 그 감정을 의식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아, 내가 지금 먹고 싶은 이유는 배가 아니라 마음이 비어 있어서구나. 그걸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날의 식사는 감정의 도피가 아니라 감정과의 화해의 자리가 될 수 있다.

 

슬픔은 심장에 머물지 않는다. 그건 위장으로, 손끝으로, 입맛으로 스며든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이 흔들릴 때 무의식적으로 냉장고 문을 열고, 입으로는 음식, 마음으로는 위로를 삼킨다. 그 행위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오히려 감정을 버티기 위한 나만의 방식일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뒤에 숨은 감정을 알아주는 것. 왜 먹는지, 왜 채우고 싶은지 그 마음을 바라봐주는 것. 오늘, 당신의 식욕이 그저 배고픔 때문만은 아니라면 그건 당신이 아직도 느끼고 있다는 증거, 아직도 살아있다는 증거다. 다음 감정 도감의 페이지엔 어떤 이야기로 채워볼까요? 감정에 어울리는 음악, 색감, 혹은 짧은 시도 함께 곁들여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