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 아이스크림을 흘린 날 – 유치한 짜증
1. 별일 아닌데 왜 이렇게 짜증 나지?
그날은 평범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에, 마음도 제법 괜찮았다. 작은 기분 전환이 필요해서, 그냥 가까운 카페에 들러 초코 아이스크림 하나를 샀다. 바삭한 콘 위에 매끄럽게 올라간 아이스크림은 보기만 해도 달콤했고, 한 입 베어무는 순간, 기분 좋은 쓴맛이 입안을 감쌌다. 그런데. 딱 세 입쯤 먹었을까, 콘이 갑자기 부러지면서 내 손을 타고 아이스크림이 주르륵 바닥으로 떨어졌다. 콘을 쥔 손에는 녹은 초코가 질질 흘렀고, 흰 운동화 위에도 점처럼 튄 얼룩. 순간, 말문이 막혔다. 솔직히, 그 정도 일로 화낼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혼잣말로 아 진짜 뭐야를 몇 번이고 되뇌었다. 가슴 한구석에서 아주 유치한 짜증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아이스크림 하나 때문에. 정말, 그거 하나 때문에.
2. 어른도 유치해질 수 있는 날이 있다.
어릴 땐, 이런 일이 있으면 당당하게 울었을 거다. 내 아이스크림 떨어졌어! 길바닥에 앉아서 펑펑 울 수도 있었고, 엄마에게 다시 사줘!라고 떼를 쓸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을 어떻게든 숨겨야 하는 나이다. 조용히 주머니에서 티슈를 꺼내 닦고, 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못 본 척 걷고, 괜찮은 척 애써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계속 되뇐다. 그냥 아이스크림 하나잖아. 별일 아니야. 별일 아니야 그런데 그럴수록 속에서 감정이 꼬인다. 왜 이렇게 사소한 일이 속을 긁고, 왜 이렇게 하루를 흐리게 만들까. 왜 내 감정은 이토록 유치해 보일까. 사실은, 그게 단지 아이스크림 때문이 아니라는 걸 나도 알고 있다. 오늘 하루, 작은 기대를 걸었던 순간이었기에. 그 작은 순간이 무너지는 느낌이었기에. 그냥 뭔가 위로받고 싶었던 마음이 허물어졌던 거다.
3. 짜증은 감정의 먼지 같은 거니까
짜증이란 건 항상 그렇다. 표면적 이유는 사소하지만, 그 안에는 숨겨진 감정들이 있다. 기대했던 게 어그러졌을 때, 애써 참고 지나간 일들이 겹겹이 쌓여 있을 때, 마음이 조용히 부풀다가 한순간 톡하고 터질 때 짜증이 찾아온다. 그건 마치, 먼지가 쌓이다 못해 티가 나는 순간 같다. 하루하루 작은 스트레스들이 마음속 책장 위에 쌓이고, 어느 날 갑자기 손끝에 닿아버린 먼지처럼 '짜증'이라는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짜증을 무시하면 할수록 그 먼지는 더 많이, 더 두껍게 마음을 덮는다. 그래서 요즘은 가능한 한 짜증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한다. "왜 이렇게 유치해?" 하고 나를 비난하기보다는, "아, 오늘 많이 참았구나" 하고 다정하게 나를 바라본다. 짜증은 감정의 먼지 같은 것. 그건 씻어내야지, 억지로 없던 척해선 안 된다.
4. 유치해도 괜찮아, 그건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야.
나는 가끔, 마음이 꼭 아이스크림 같다 느낀다. 겉은 단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주 쉽게 녹아버리고, 쉽게 부서진다. 너무 덥거나, 너무 무심하거나, 그저 운이 조금 나빴던 날에도 흘러내릴 수 있다. 그럴 땐 내 감정도 함께 녹아내린다. 작은 일로 짜증이 나고, 유치한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고,사람들은 "그게 뭐라고 그래?"라며 웃지만 내겐 그게 오늘 하루를 버텨준 마지막 조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 "유치한 짜증" 하지만 그 짜증은 내 하루가 얼마나 정성스러웠는지, 작은 순간에도 기대를 걸 수 있었던 내 마음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감정을 유치하다고 부끄러워하지 말자. 그건 살아 있다는 뜻이고, 여전히 느낄 수 있다는 뜻이고, 다시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고를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초코 아이스크림을 흘린 날, 나는 한동안 우울했고 짜증 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순간마저도 웃음 섞인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됐다. 그 사소한 짜증이 나를 얼마나 인간답게 만드는지. 유치한 짜증은 나쁘지 않다. 그건 나를 지키기 위한 가장 작은 울음이고, 지나고 나면 분명 내 마음의 어딘가를 다정하게 다듬어 줄 것이다.